오래간만에 영화를, 그것도 일본 영화를 봤다.
감독은 내게 너무나 익숙한 이와이 슌지
러브레터, 하나와 앨리스, 4월 이야기 등 그의 메이저 영화는 거의 빼놓지 않고 다 봤던 나이지만
이번 영화는 그의 영화 중 가장 이해하기가 힘든 영화이다.
그래서일까. 이와이 슌지 감독 본인도 이 영화를 유작으로 남기고 싶다고 했다.
사실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어느 라디오를 듣다가..
그룹 Nell 의 보컬 김종완씨가 감명 깊게 봤던 영화로 이 영화를 꼽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간 보리라고 생각을 했었고, 영화를 보고 나니
불현듯 Nell 의 음악적 색깔이 이 영화의 색깔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가 이 영화를 가장 감명깊게 봤다고 말했던 것이 어느 정도 납득이 됐다.
영화는 14살 어느 평범한 중학생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겠지만, 이 영화에선 원조교제, 강간, 살인 등
14살이라는 나이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범죄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범죄들의 중심에는 어울리지 않게 미성숙한 주인공과 그의 친구들이
자리잡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건.. 툭하면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로 돌아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는 나에게도, 14살 때, 견디기 쉽지 않은 순간들이 존재했었고
그 순간들의 존재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왔다는 것이다.
14살이라는 나이가 우습게 보일 수 있는 나이이지만, 이 영화를 보고나니
나의 14살 시절도 순탄치는 않았고, 현재의 14살 아이들도 쉽지 않은 그들만의 14살을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막연히 (어쩌면 미화됐을지 모를) 추억에
의지해 과거를 기억하는 나 자신을 되돌아봤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영화 내내 간헐적으로 반복되는 키보드 소리, 그리고 어두운 배경의 RELOAD 라는 글자.
그 글자처럼 어둡고 답답한 흐름이 러닝타임을 지배하는 영화이다.
<러브레터>나 <무지개 여신>처럼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현실 속의 예쁜 현실을 담진 않지만,
현실 속의 어두운 현실을 영화에 담음으로써 다시금 감독의 영화 세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던, 그런 영화인 것 같다.
ps. 세상은 공기로 가득 차있듯, 나의 세상은 나만의 에테르로 가득 차있다.